105인사건 3

서울현충원 - 안태국(安泰國) 묘

안태국(1877년~1920년)양기탁, 안창호 등이 신민회를 설립하자가입하여 평안남도 총감이 되었고 신민회최고위간부로 임명되어 활동하였다태극서관 설립에 참여했으며 청년학우회발기인으로서 초대 총무에 임명되었다1909년 이재명의 이완용 암살미수 사건이일어나자 연루자로 지목되어 2개월간혹독한 고문을 당하며 투옥되어있다가석방되었고 만주에 무관학교를 설립하는일에 평안남도 대표로 참여하여 군자금모집과 이주민 모집을 분담하기도 했다1910년 안명근 사건이 일어나자 체포되어징역 2년형을 선고받았고 일제가 신민회를탄압하기 위해 데라우치 총독 암살 음모사건을 날조하여 신민회 회원들을 기소하자 복역중 재기소되어 징역 10년형을언도받았는데 이 재판에서 물증까지제시하며 사건이 날조되었음을 폭로하여일본 재판부를 궁지에 몰아넣기도 ..

서울현충원 2024.09.22

서울현충원 - 임치정(林蚩正) 묘

임치정 (1880년~1932년) 안창호와 함께 교포단체인 공립협회를 조직하여 간사로 활동했으며 귀국하여 대한매일신보의 회계사무 업무를 맡아 보았다 1907년 비밀 단체 신민회에 가입하여 활동하다 105인 사건에 연루되어 체포되었다 혹독한 고문 끝에 윤치호, 양기탁, 이승훈, 안태국, 유동열과 함께 주모자 6인으로 지목되어 징역 10년 형을 선고받았다 1914년 특사로 석방되고 이승훈 등과 3.1운동을 계획하고 평안도 일대에서 시위가 일어나는데 큰 역할을 하였으며 후에 대한민국 임시정부에도 참여하였다 (건국훈장 독립장 추서)

서울현충원 2024.04.01

서울현충원 - 안병찬(安炳瓚) 묘

안병찬 (1879년~1921년) 1909년 안중근이 이토 히로부미를 암살하자 변호사 자격으로 여순 법정으로 향했으나 일본 측에서 관선변호사만 인정하고 안병찬의 변호는 인정하지 않았으며 같은 해 이재명이 이완용을 암살하려다 실패하자 이면우와 변호를 담당하였다 1911년 일명 '105인 사건' 당시 잡혀 고초를 겪었으며 그 후 만주로 망명하여 대한독립청년단 총재가 되어 활동하다 다시 체포되어 금고형을 선고받았다 병보석으로 가출소하고 바로 중국으로 망명해 임시정부 법무처장을 지내고 고려공산당 중앙위원 등을 지내며 독립운동을 이어가다 반대파인 상해파에게 암살당했다 (마적에 의해 암살되었다는 설도 있음) (건국훈장 독립장 추서)

서울현충원 2024.03.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