흥사단 4

서울현충원 - 김붕준(金朋濬) 위패

김붕준(1888년~1950년)안정근과 함께 신민회에 가입해 활동했고3.1운동 이후 중국으로 망명하여 대한민국임시정부 수립에 참여했다. 임시정부 비서장과임시의정원 의원 등을 지내고 안창호와 흥사단원동위원부를 창설했으며 상해 대한인교민회단장을 지냈다. 독립신문 경영, 인성학교 교장등을 지내며 독립 정신을 고취시키는 한편흥사단 원동위원장, 임시의정원 의장 등을역임했다. 이후 임시정부 국무위원으로활동하다 광복을 맞아 귀국했으며 정치에입문해 비상국민회의 최고정무위원을 지냈다또한 남조선과도입법의원 헌법·선거법기초위원장을 지냈고 김규식, 여운형, 안재홍등과 함께 좌우합작위원회의 중심 인물로활동했다. 신진당을 창당했으며 남북협상에관여했고 제2대 국회의원 선거에 출마했으나지청천에 밀려 낙선하였다. 얼마 뒤 6.25전쟁이..

서울현충원 2025.04.17

구리 유상규(劉相奎) 묘

유상규(1897년~1936년)경신의학전문학교에 입학하였으나 3.1운동이후 학업을 중단하고 대한민국 임시정부의조사원으로 평북 강계 지역 책임자로 활동했다1920년 안창호의 비서가 되었으며 흥사단에가입하고 적극적으로 활동을 해오다가안창호의 권고로 학교를 복학하였으며졸업 후 경성의학전문학교 부속 병원의외과 의사 및 강사로 활동함과 동시에동아일보 주최의 강연회에 참석하여계몽 활동을 벌였으며 수양동우회 등에도가입하여 활동하는 등 민족의 건강을 위한의학적 계몽 활동에 적극적으로 나섰으나환자를 치료하던 중 단독에 감염되어 사망하였다 (건국훈장 애족장 추서)

경기도 2024.05.09

서울 안창호(安昌浩) 묘

안창호 (1878년~1938년) 독립협회에 가입하고 신민회가 만들어지자 부회장으로 활동하였으며 미국에서 흥사단을 창설하고 대한인국민회 중앙총회장이 되었다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수립되자 내무총장 겸 국무총리 대리를 맡았으며 국민대표회의 부의장으로 독립운동의 통합을 주도했었으나 실패했다 1932년 윤봉길 의사 의거가 일어나자 체포되어 복역했으며 그 후 동우회사건으로 다시 체포되었으나 건강이 안좋아져 보석으로 풀려났고 얼마 뒤 사망하였다 (건국훈장 대한민국장 추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