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인애국단 2

서울 이봉창(李奉昌) 묘

이봉창(1901년~1932년)일본인 밑에서 점원 등으로 일하다여러 번 해고당했으며 일본으로 건너가일본인의 양자가 되어 '기노시타'라는이름까지 얻는 등 진심으로 일본인으로살고 싶어했으나 조선인이라는 이유로차별당했고 결국 생각을 고쳤다고 한다중국으로 망명하여 임시정부와 접촉해독립운동에 투신할 것을 다짐했으나당시 능숙한 일본어, 특유의 일본인 제스처등으로 임정 사람들의 의심을 받아 어려움을겪었다. 하지만 김구는 그를 믿어주었고한인애국단에 가입해 거사를 준비하게 됐다1932년 1월 8일 경시청 앞을 지나가는일왕 히로히토에게 폭탄을 던졌으나여러 대의 마차 중 어느 곳에 히로히토가타있는줄 몰랐고 결국 두 번째 마차에다폭탄을 던졌지만 히로히토는 첫 번째마차에 타고 있어 위기를 벗어났다거사 직후 체포되어 사형을 선고받..

서울 윤봉길(尹奉吉) 묘

윤봉길(1908년~1932년)3.1운동 이후 다니던 학교를 자퇴하고한학을 배우러 서당에서 공부하였다월진회를 조직해 야학과 강습을 열며농촌 진흥, 문맹 퇴치, 계몽 운동에 힘쓰다'장부가 집을 나서니 살아 돌아오지 않겠다'라는 말을 남기고 중국으로 망명하였다중국에서 세탁소 직원으로 일하며기회를 보다 이봉창의 의거 이후에김구를 찾아가 한인애국단에 가입했다그러다 일본이 상해사변 전승 축하기념식겸 천장절을 상하이 훙커우 공원에서연다는 소식을 듣고 거사를 결심했고1932년 4월 29일, 행사 도중 단상을 향해폭탄을 투척했다. 이로 인해 상해 파견군사령관 시리카와, 상해 일본거류민단장가와바다 등은 사망했고 제3함대사령관노무라, 제9사단장 우에다 등은 중상을입었다. 거사 직후 일본 헌병에게 구타당하며 체포되었고 모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