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규식(1881년~1950년)6세의 나이로 고아가 되었으나 미국 선교사언더우드의 도움으로 성정했으며 미국으로 건너가로노크대학교에서 공부하고 프린스턴대학교에서석사 학위를 받고 귀국하였다. 연희전문학교 강사를지내는 등 교육인으로 활동하다 중국으로 망명했고1919년 파리강화회의에 한국인 대표로 참석했다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수립되고 외무총장, 학무총장,구미위원장 등을 지냈으며 김원봉, 지청천 등과민족혁명당을 창당하고 주석이 되었다. 이후에는다시 임시정부로 돌아와 국무위원을 지내다가부주석에 선임되어 김구와 함께 임시정부를이끌다가 해방을 맞이했다. 귀국하여 김구, 이승만등과 함께 우익 3영수로 불리며 정치인으로활동했으나 여운형 등과 좌우합작위원회를결성하여 우파 대표로 활동했으며 미군정의주도로 남조선과도입법의원이 결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