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대표48인 2

서울현충원 - 송진우(宋鎭禹) 묘

송진우(1890년~1945년)전라남도 담양 출생으로 영학숙에서신학문을 접하고 그곳에서 알게된 김성수와일본으로 유학을 떠나 메이지대학 법학부를졸업하고 귀국했다. 김성수가 중앙학교를인수하자 교장이 되었고 1918년 중앙학교숙직실에서 김성수, 현상윤, 최남선, 최린 등과3.1운동을 계획했고 주도자의 한 사람으로체포되어 옥고를 치렀다. 이후 동아일보가창립되자 고문, 주필, 사장을 지내며 사상적기반을 다졌으며 물산장려운동, 민립대학설립운동 등을 이끌었다. 오랜 시간 동아일보를이끌었으나 1936년 손기정 일장기 말소 사건당시 일제의 압력으로 사장직을 사임했으며일제에게 대일협력을 강요받았으나 거절하며창씨개명 또한 하지않았다. 해방 직전에총독부에게 치안권 위임 등을 제안받았으나거절했고 해방 후 국민대회준비회를 조직하여..

서울현충원 2025.04.02

양주 백숙양 묘 (현상윤 부인)

현상윤(1893년~1950년)1914년 일본 와세다대학을 입학해1918년 졸업하고 귀국하여 중앙고등보통학교교사로 부임하여 교육자로 활동하였다3.1운동 당시 송진우, 최린, 최남선 등과중앙학교 숙직실에서 거사를 도모하고기독교와 천도교가 참여하는 과정에서중요한 역할을 하며 민족대표로서 서명하려고했으나 어린 사람은 보호해야한다는주장으로 서명하지 않고 주모자 48인으로분류되어 체포되고 옥고를 치르게 되었다그 후 중앙고등보통학교 교장을 지내고재단법인 중앙학원 이사, 조선물산장려회 이사등을 지내다 조선유도연합회 평의원,임전보국단 발기인 등 친일 단체에서 활동하고친일 강연, 친일 글 등을 기고하였다해방 후 보성전문학교 교장을 지내던 중고려대학교로 인가되면서 초대 총장이 되었다그러나 6.25전쟁 당시 납북되어 사망했다

경기도 2024.04.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