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병찬 (1879년~1921년) 1909년 안중근이 이토 히로부미를 암살하자 변호사 자격으로 여순 법정으로 향했으나 일본 측에서 관선변호사만 인정하고 안병찬의 변호는 인정하지 않았으며 같은 해 이재명이 이완용을 암살하려다 실패하자 이면우와 변호를 담당하였다 1911년 일명 '105인 사건' 당시 잡혀 고초를 겪었으며 그 후 만주로 망명하여 대한독립청년단 총재가 되어 활동하다 다시 체포되어 금고형을 선고받았다 병보석으로 가출소하고 바로 중국으로 망명해 임시정부 법무처장을 지내고 고려공산당 중앙위원 등을 지내며 독립운동을 이어가다 반대파인 상해파에게 암살당했다 (마적에 의해 암살되었다는 설도 있음) (건국훈장 독립장 추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