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조선과도입법의원 3

서울현충원 - 김규식(金奎植) 위패

김규식(1881년~1950년)6세의 나이로 고아가 되었으나 미국 선교사언더우드의 도움으로 성정했으며 미국으로 건너가로노크대학교에서 공부하고 프린스턴대학교에서석사 학위를 받고 귀국하였다. 연희전문학교 강사를지내는 등 교육인으로 활동하다 중국으로 망명했고1919년 파리강화회의에 한국인 대표로 참석했다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수립되고 외무총장, 학무총장,구미위원장 등을 지냈으며 김원봉, 지청천 등과민족혁명당을 창당하고 주석이 되었다. 이후에는다시 임시정부로 돌아와 국무위원을 지내다가부주석에 선임되어 김구와 함께 임시정부를이끌다가 해방을 맞이했다. 귀국하여 김구, 이승만등과 함께 우익 3영수로 불리며 정치인으로활동했으나 여운형 등과 좌우합작위원회를결성하여 우파 대표로 활동했으며 미군정의주도로 남조선과도입법의원이 결성..

서울현충원 2025.04.24

서울현충원 - 윤기섭(尹琦燮) 위패

윤기섭(1887년~1959년)오산학교 교사로 재직하다 중국으로 망명 후신흥무관학교의 교장으로 활동하였다. 1912년부민단에 가입하고 대한민국 임시의정원에서활동하다 의장에 선출되었으며 민족혁명당창당에 참여하였다. 임시정부가 충칭으로이전하고 군무차장, 국무위원 등을 지내다가해방을 맞이하여 제2진으로 귀국하였다해방 정국에서 민주주의민족전선 부의장을지냈으나 중도우파 성향이었던 그는 곧좌우합작위원회에 참여했고 그 해 12월에남조선과도입법의원 부의장에 선출되었다국학대학의 학장이 되었고 제2대 국회의원선거 당시 서울 서대문구 을에 출마하여당선되었으나 6.25전쟁 당시 납북되었다북에서 재북평화통일촉진협의회가 결성되자상무위원으로 활동하다 간첩 혐의를 받고투옥되어 병세가 악화되었고 결국 사망했다 (건국훈장 대통령장 추서)

서울현충원 2025.04.14

서울현충원 - 최동오(崔東旿) 위패

최동오(1892년~1963년)일찍이 동학교 입교해 강도사로 활동했으며3.1운동이 일어나자 의주에서 만세운동을주도하였다. 의주 천도교단의 후원을 받고천도교 대표로 임시정부로 넘어갔으며 내무부지방국장 등을 지냈다. 또한 김동삼, 현익철 등과정의부에서 활동했고 후에 국민부가 결성되자외교위원장에 선임되었다. 국민부 조직 개편으로조선혁명당이 창당되자 국제부장을 역임했고김원봉, 김규식 등과 민족혁명당을 창당했으며대한민국 임시정부에 합류해 의정원 부의장,법무부장 등을 역임하다 광복을 맞이했다광복 후 귀국하여 과도입법의원 부의장을지내고 민족자주연맹 소속으로 정치활동을이어가다 6.25전쟁이 일어나 납북당하였다북에서 재북평화통일촉진협의회 상무위원을지내며 활동하다 심장마비로 세상을 떠났다 (건국훈장 독립장 추서)

서울현충원 2025.04.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