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현충원
서울현충원 - 김규식(金奎植) 위패
답사객
2025. 4. 24. 09:00
김규식
(1881년~1950년)
6세의 나이로 고아가 되었으나 미국 선교사
언더우드의 도움으로 성정했으며 미국으로 건너가
로노크대학교에서 공부하고 프린스턴대학교에서
석사 학위를 받고 귀국하였다. 연희전문학교 강사를
지내는 등 교육인으로 활동하다 중국으로 망명했고
1919년 파리강화회의에 한국인 대표로 참석했다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수립되고 외무총장, 학무총장,
구미위원장 등을 지냈으며 김원봉, 지청천 등과
민족혁명당을 창당하고 주석이 되었다. 이후에는
다시 임시정부로 돌아와 국무위원을 지내다가
부주석에 선임되어 김구와 함께 임시정부를
이끌다가 해방을 맞이했다. 귀국하여 김구, 이승만
등과 함께 우익 3영수로 불리며 정치인으로
활동했으나 여운형 등과 좌우합작위원회를
결성하여 우파 대표로 활동했으며 미군정의
주도로 남조선과도입법의원이 결성되자 의장에
선출되었다. 또한 민족자주연맹 위원장이 되어
정치 지도자로 활동했고 남북연석회의 당시
김구와 함께 평양으로 건너가 김일성, 김두봉과
4김회담을 주도했으나 의미 있는 결과를 얻지는
못했다. 다시 서울로 돌아오고 국회의원 선거에
출마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밝히며 정치 생활을
접었으나 6.25전쟁 당시 모시기 공작으로 북한에
납북되었고 납북길에 지병으로 세상을 떠났다
(건국훈장 대한민국장 추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