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
구리 박희도(朴熙道) 묘
답사객
2024. 3. 20. 15:30
박희도
(1889년~1952년)
신학교를 졸업하며 종교인의 길에
들어섰고 YMCA에서도 활동하였다
1919년 3.1운동 당시 민족대표 33인
개신교 대표로 서명했으며 김창준, 이갑성과
함께 최연소 민족대표 33인이 되었다
이 일로 체포되어 옥고를 치르고 출옥 후에
흥업구락부, 신간회 등에 참여하는 등
계속해서 독립운동을 이어오다 후반에
전향하여 일제에 적극 협력하기 시작했다
조선인 징병제 실시를 촉구했으며
조선임전보국단, 국민총력조선연맹,
조선언론보국회의 등에서 활발히 활동하였다
해방 후 반민특위에 체포되었으나 곧
풀려났고 한국전쟁 기간 중 사망했다
<부모 박계근/변루 묘>